초등 동기회 야유회
장소 문경새재 도립공원
일자 22.10.30 06시 출발
9시 40분 3관문쪽 도착
제1관문 까지 약 10km 정도 산행
런닝타임 3시간 1시 식당 집결
재경 23명 고향 11명 총 34명
사과(감홍)축제와 겹쳐 인산인해
마성 솔밭에서 2차
오랜만에 3관문에서 출발하는 산행
옛날 기억과는 딴 세상
모든 곳이 관광지
감홍 사과 5kg에 45000원 정도 당도가 탁월
고향이라 전설만 정리해서 올려 봅니다.
1,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했던 유명한 인물인 최명길도 이 문경새재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옛날 옛적, 조선 인조때 젊은 최명길은 외숙께 문안을 드리기 위해 안동으로 가면서 문경새재를 통과하였다.
그때 용모가 단정하고 자색이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뒤를 따라 오면서 "험한 산길이라 여자 혼자 무서워 갈 수 없으니 동행할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최명길은 성격이 호방한데다가 젊은 여인이 동행을 원하는지라 쾌히 승낙하고 같이 동행하면서 그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여 마음속에서 살피고 있었다.
‘어인일로 젊은 여인네가 이 험한 산길을 홀로 넘는단 말인가?’
앞서가던 여자도 그 눈치를 차렸는지 뒤를 돌아보고 방긋이 웃으며 "공이 저를 의심하는 모양이니 내 정체를 말씀하리다. 저는 사람이 아니고 새재성황신인데 안동사는 좌수 모씨가 서울 갔다 오는 길에 성황당 앞을 지나면서 성황당에 걸려 있는 치마를 보고 욕심을 내어 치마를 훔쳐 제 딸년에게 주었으니 이런 고약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좌수 딸을 죽이러 가는 길인데 우연히 공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고 말을 하면서 최명길의 눈치를 살핀다.
최명길은 마음속으로 놀랐으나 태연자약하게 "인명은 재천인데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소" 하면서 용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그 여자는 한참 대답이 없더니 "공은 향후 영의정에 오를 몸이요, 병자호란이 일어나는데 공은 큰 공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는 흥할 것이니 부디 청과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오늘 좌수의 딸을 죽일 것이되 공의 체면을 봐서 징벌을 할 것이니 공은 이렇게 하여 제 체면을 세워 주시오" 하고는 간 곳이 없었다.
최명길은 이상히 여기고 급히 서둘러 안동 모 좌수 집을 찾으니 좌수 딸이 급사하여 집안이 발끈 뒤집혀 경황이 없었다.
"딸을 내가 회생시킬 수 있으니 딸 있는 방으로 안내하시오“
주인은 죽은 딸을 살리겠다니 감사히 여겨 최명길을 딸 방으로 인도하였다.
최명길은 딸 방에 들어서면서 까무러칠 듯 놀란다.
새재서 본 성황신이 좌수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일어나면서 "이제야 오십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성황신과 최명길의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나 성황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성황당에서 가져온 치마를 빨리 불사르고 깨끗한 음식을 장만하여 치제하시오”
좌수는 백배사례하고 최명길의 말대로 치성하니 딸이 다시 살아났다.
신기한 일을 겪은 그 후 과연 최명길은 벼슬이 차츰 올라 영상이 되고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일전의 새재성황신의 말대로라면 앞으로는 청의 시대가 될 터인데, 화친하지 아니하면 조선의 국운이 다하리라’
하지만 청과 맞서 싸우자는 주전론파가 우세하여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항쟁하였으나 고려시대 몽골군에게도 함락 당하지 않았던 강화도가 청군에 의해 함락되자 화친을 청하고 군신의 예인 사배구고두를 행하였다.
최명길과 문경새재 성황신의 일화에 등장하는 성황당은 아직 새재길에 남아있다.
2,
조선 태종 때 처음으로 조령을 넘던 길을 개척할 때의 일입니다. 이때 문경현감이 조정에 보고를 올려야 할 중대한 안건이 있었습니다. 현감은 요성의 역졸 가운데 신체가 건강한 역졸을 골라서 왕에게 올릴 장계를 가지고 급히 다음 역까지 전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감의 명령을 받은 역졸은 다음 역을 향해 문경새재를 넘어가다가 호랑이를 만나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문경현감은 역졸이 호환을 당한 줄도 모르고 이미 조정에 보고할 문서를 올렸으니 그 비답을 내릴 줄 알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뜻밖에도 조정에서는 문경현감에게 관계된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보고하라는 엄명이 내렸습니다. 문경 현감은 깜짝 놀라 요성역으로 가서 이미 보낸 그 역졸을 호출하였으나 그는 지금까지 귀임하지도 않고 행방불명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이 사실을 안 현감은 즉시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호령하고 그 역졸의 행방을 탐색하기 위해 문경새재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 결과, 호랑이가 먹다 남은 신체 일부와 떠날 때 차려입었던 옷가지와 행장이 발견되었습니다. 현감은 또 다시 지연된 사유와 아울러 조정에 사건의 경위를 주상께 보고하였습니다.
이 장계를 받은 태종대왕은 대노하여 즉시 어명을 받든 사신을 뽑아 문경새재 산신령을 잡아오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사신은 밤낮으로 길을 달려 문경새재에 도착하여 산신령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산신령을 잡을 묘안이 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새재 산신 사당에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낸 후 제문을 사르고 혜국사에 머무르면서 기다렸습니다. 그 날 밤은 밝은 보름달로 달빛이 휘영청 밝아 잠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는데 한밤중이 되어 천지가 진동하는 듯 호랑이 울부짖음이 일어나더니 잠잠해졌습니다. 그 이튿날 일어나보니, 새재 산신 사당 앞마당에는 산과 같은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봉명사는 그 호랑이 가죽을 벗겨 태종 대왕께 호피를 바치고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문경새재에는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 *문경전씨 전진 2세조 ( 聞慶錢氏 錢珍 2世祖)* 문중에 전진公 (錢珍)공 이라는 뛰어난 도인이 혜국사에 묵고 있었는데 그의 꿈에 새재 산신령이 현몽하기를, “나는 새재 산신령이요, 나라에 죄를 지어서 아직 지은 죄를 용서 받지 못하였으니 그대가 나를 위해 나라에 상소하여 억울한 죄명을 씻어줄 수 없겠는가?” 하고 간청하였습다. 그는 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고 즉시 새재 산신령에 관하여 죄를 용서하기를 구하는 상소를 올렸더니 태종 대왕께서 친히 그렇게 해도 좋다는 명을 내리시어 새재 산신령의 죄를 용서하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습니다.
3,
어린 신립이 사냥 중에 처녀가 홀로 사는 새재의 한 촌가에 묵었는데, 처녀의 식구는 인근의 괴수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처녀 혼자 죽을 위험에 처했다. 객의 도움으로 무사히 밤을 넘긴 처녀는 목숨을 의탁하고 데려가주길 청하였으나 신립은 매정하게 곁을 떠난다. 처녀는 원망하며 집을 불사르고 스스로 불타 죽는다. 훗날 장군이 새재에 주둔해 있을 때, 하늘로부터 탄금대로 철수하라는 처녀의 말이 들렸다고 한다. 그것이 장군이 후퇴한 이유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의 주인공은 그 처녀의 원혼이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