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매니지먼트구

결혼 덕담 써 주는 여자

2017.11.24

제가 글을 쓰기 때문인지 주변으로부터 이런저런 글 부탁을 받곤 합니다. 하긴 가진 게 글밖에 없는 사람이니 제게 부탁을 하게 된다면 그 일밖에는 없을 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글 부탁은 적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럽기조차 했습니다.
다름 아닌 결혼 덕담을 좀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는 추세라 주례사 대신 부모가 신랑 신부에게 결혼 덕담을 한답니다. 그러다보니 그럴듯한 덕담은 온라인에서 공유되기도 한다네요. 판에 박힌 주례사보다는 덜하지만 자기 자식에게 주는 말을 온라인 상에 떠도는 말을 적당히 짜깁기하여 건넨다는 것도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쨌거나 기왕 부탁 받은 일이니 신랑 신부를 모른다 해도 할 수 있는 ‘표준 덕담’을 써보았습니다. 혹 제 글이 온라인에 떠돌게 된다면 ‘덕담 저작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참에 결혼 덕담 써주는 일로 돈벌이를 하든가요.^^
과연 제가 '결혼 덕담 써 주는 여자'가 될 수 있을지 일단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들 ** 과(와) 막 며느리가 된 **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하객들을 모시고 너희들에게 이렇게 축복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고 의미 있게 생각한다.
너희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혼자보다 둘이 함께 하는 삶이 더 행복하고 의미 있을 것이란 생각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아서,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것을 너희들에게 오늘 말하고 싶구나.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의 선배로서 엄마 아빠의 경험을 오늘 너희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이 있지만 실상 부부는 ‘이심이체(二心異體)’이다. 엄연한 다른 존재, 딴 사람이라는 것이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도 그렇다. 몸도 마음도 별개인 두 사람이 만나서 평생 맞춰가며 사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너희들도 소와 사자 부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겠지?
소와 사자가 어떻게 부부가 될 수 있냐고 묻지는 말아라. 살다보면 소와 사자의 관계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도 되는 게 부부생활이니.
소는 사자를 사랑한답시고 매일 아침, 싱싱한 풀을 한 바구니씩 뜯어주고, 사자는  피가 뚝뚝 듣는 갓 잡은 짐승을 소 앞에 의기양양하게 던져 줬다지. 그러면서 이 맛있는 음식을 왜 먹지 않느냐고, 나의 정성과 사랑을 무시하는 거냐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싸웠다잖아. 자기가 좋은 것이 상대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지. 사랑은커녕 실상은 상대에게 혐오스러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더하단다.
소와 사자 부부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왜 너는 좋아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고, 너와 내가 같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고, 더 나가서는 나와 배우자는 반드시 같은 가치관과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일 등등, 사안과 경우에 따라서 사랑이 곧 폭력이 되는 일이 흔하게 등장한다. 상대와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는 자체가 실상 폭력이다.  
대신 너희는 서로가 서로를 비춰 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왜 자기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도록 조물주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사람의 내면과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신체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없도록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기에 나를 제대로 비출 수 있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있어야 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됨으로써 각자 가장 정직하고 객관적인 거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줄 때에 함께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행복한 진정한 의미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름), ** (며느리이름)야.
부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라. 사랑의 기초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내 안에, 나를 상대 안에 담아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결혼을 축하한다!
두 사람을 축복하며, 엄마 아빠가.

김재범 웨딩화보 / 사진=해피메리드컴퍼니, 원파인데이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