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의학을 받아들이는 자세...일본과 조선의 차이는?

채희성 2017. 3. 23. 12:18

근대 의학을 받아들이는 자세...일본과 조선의 차이는?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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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오카 세이슈의 유방암 절제 수술 도해

마취없이 수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픈 곳 고치려다 고통을 못 참고 먼저 죽을 것이다.
한국 의대에서는 1846년 미국 하버드대의 존 워런이 에테르를 사용하여 집도한 환자의 목 혹 제거 수술이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이라고 배운다. 아마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지식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르게 가르친다.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은 1804년 일본인 의사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青洲)의 유방암 수술이었다고 가르친다. 일본마취학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의학 전공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이슈가 개발했다는 마취약은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는 모양이다. 또한 수술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남아있어 딱히 (기록에 근거한) 세계 최초성을 부정하기도 어려운 모양이다.
 
세이슈의 전신마취 외과수술은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여지던 서양의학(일본에서는 난방학)이 일본에서 실제 임상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근대성의 중핵인 ‘과학성’이 인식체계의 구성 요소로 편입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근대성으로의 ‘파라다임 쉬프트’이다.
 
세이슈의 성과는 어찌 보면 서양을 추월한 것이었다. 양의학에서 에테르를 사용한 전신마취 수술보다 40년 앞서 독자적인 마취약제 개발과 절제술로 유방암 수술을 집도하였으니 말이다. 세이슈의 이러한 성과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에 새로이 유입된 서양의학에 대한 이전 세대부터 진행된 ‘도전 vs 응전’의 사회진화적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의학은 양의학과 달리 해부학을 경시한다. 히포크라테스가 해부학의 시조라고 불릴 정도로 ‘의학 = 해부학’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양의학과 달리 중국 유래의 한의학은 氣, 精, 神의 수양(보양)을 중시하며, 몸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조화를 중시하기(생명작용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해부를 터부시한다. 전통 동양 의학의 관점에서는 죽은 자라 할지라도 사체에 손을 대는 것은 불경이었고 해부를 한다 하여도 의미도 없었다.
 
이러한 전통의 영향 아래 있던 일본에게 네덜란드로부터 입수되는 근대 의학서는 일대 충격이었다. 특히 해부학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막부는 야만스런 짓이라고 금서 조치를 하고 유통을 제한하였지만, 실제 의술을 담당하던 의사들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인체를 이토록 자세하고 정밀하게 뜯어볼 생각을 하다니.. 직업 의식이 꿈틀거리며 기존의 윤리/규범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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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신서

1774년 스기타 겐파쿠를 비롯한 한 무리의 의사들과 번역가들이 <해체신서>를 발간한다. 독일 의사 쿨무스의 《해부도보》(Anatomische Tabellen)라는 책의 네덜란드어판인 《타펠 아나토미아》(Ontleedkundige Tafelen)를 일본어로 중역한 것이다. 막부의 눈치를 보고, 화란어를 모르니 장님 코끼리다리 만지듯, 난해한 퍼즐 맞추기 하듯 맨땅에 헤딩해 가며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본 결실이다. 등록된 간행처가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막부의 허가도 얻었다. 막부는 서양의학이 전통 관념에는 배치되지만, 전문지식인 집단인 의사들의 요청을 무시할 정도로 꽉 막혀있지는 않았다.
 
해체신서의 발간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의학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맹아였고, 책상머리의 고담준론을 벗어난 실증과 실용의 세계에 새로이 눈을 뜬 근대성의 출발을 의미한다.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 병원을 견학한 조선의 신진관료 송헌빈은 해부도와 해부용 인형 등을 보고는 “정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는 인술을 하는 자가 할 짓이 아니다. 고약하고 고약하다”고 적었다고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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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3-23 09:20   |  수정일 : 2017-03-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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