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의 제곱수로 계속 확대하면
은하와 소립자 모양은 닮은꼴
10의 제곱수 필립 모리슨·필리스 모리슨·찰스와 레이 임스 연구소 지음, 박진희 옮김/사이언스북스·2만2000원 영화 <맨 인 블랙>에는 카메라 시선이 등장인물들에서 그들이 있는 도시 거리, 그리고 지구, 다시 태양계, 또 은하계로 순식간에 이동하면서 그 은하계가 고양이 목걸이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이 나온다. 뒤이어 영화는 그런 목걸이들을 작은 구슬처럼 가지고 노는 ‘어떤 거대존재’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장면도 보여준다. 지구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인공위성에 장착된 카메라의 눈으로 까마득한 고공에서 특정 장소의 건물 내부까지 빠르게 육박·확대해 들어가는(줌인) 범인색출 장면도 영화에는 흔히 등장한다. 미국의 천재적인 디자이너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는 1977년에 그런 기법을 이용해 소립자로 이뤄진 극미세계에서 은하 너머의 초거대 우주까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영화 <10의 제곱수>(Powers of Ten)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영화는 한 네덜란드 교사가 쓴 책 <우주의 조망-40번의 도약으로 본 우주>(Cosmic View-The Universe in Forty Jumps)를 토대로 삼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번엔 다시 그 영화의 틀을 토대로 최신 과학발견과 첨단기술을 활용한 사진 등 시각자료와 도판, 천문·지리·생물·화학 등 관련 분야 해설까지 넣은 책 <10의 제곱수>가 출간됐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획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미국 미시간호 연안 도시 시카고의 경기장과 인근 요트 계류장 사이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휴식중인 젊은 부부의 모습을 중심에 앉힌다. 그 장면에서 왼쪽, 즉 책 앞쪽으로 책장을 한장씩 넘길 때마다 1m(미터) 기준으로 10배씩 거리가 멀어진 곳에서 같은 장소를 찍은 사진이 나오고, 그 왼쪽 면(짝수 쪽)에는 관련 자료사진과 해설이 붙는다. 그러니까 거기서 앞쪽으로 두 장을 넘기면 1m의 100배(10의 2승), 곧 100m 떨어진 곳에서 같은 장소를 찍은 모습이 나오고, 같은 방향으로 다섯장을 넘기면 10의 5승, 즉 10만m=100㎞(킬로미터), 10장을 넘기면 10의 10승m=1000만㎞에서 찍은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책은 거기서 25장 앞까지 가는데, 그것은 10의 25승m의 빛의 속도로 10억년, 즉 1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시카고의 그 부부를 찍은 장면이 나온다. 물론 티끌 같은 작은 점들로 찍힌 희미한 은하계들만 보일락 말락 잡힌다. 반대로 중심의 그 부부가 쉬는 장면에서 책 뒤쪽으로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남편의 손 피부와 계곡처럼 파인 땀구멍, 그 속의 혈관, 그 속의 헤모글로빈, 그리고 염색체, 유전자 나선구조, 원자, 원자핵, 양성자, 쿼크 식으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현미경으로 10배씩 확대한 듯한 장면들로 계속 옮겨간다. 중심에서 12장 뒤쪽, 즉 10의 마이너스 12승 장면에 등장하는 밝은 점 하나로 그려진 원자핵 이미지는 마치 앞쪽 10의 16승, 즉 시카고에서 10조㎞=1광년 떨어진 곳에서 시카고를 향해 찍은 이미지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 책을 통상적인 방법으로 앞쪽에서부터 펼치면, 10억 광년 저 너머서 찍은 작은 먼지 같은 은하들 모습에서 부부 모습을 거쳐 쿼크와 쿼크들을 구성하는 정체불명의 그 무엇들까지의 이미지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거대 우주에서 극미의 소립자 세계까지, 42단계로 된 선명한 시각자료를 차례로 펼치는 파노라마가 경이롭다. 역시 이론보다는 시각이다. 백문이불여일견. 플라톤도 이렇게 말했단다. “시각 모형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어떤 경이로운 구조를 서술만 하는 건 헛된 노동이 될 것이다.”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