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2-11-18 14:59 / 수정: 2012-11-18 14:59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
어느 날 공원묘원 옆을 지나가던 등산객이 친구에게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곳저곳 비석에 학생이란 글자가 써 있지.” 그러자 친구가 서슴없이 말을 받았다. “공동묘지에 새로 입학했으니까 학생이지. 안 그래.” 조상숭배사상이 많이 퇴조한 현 세태를 풍자한 조크다.
바야흐로 시향(時享)의 계절이 돌아왔다. 전통적으로 조상의 혼령에게 음식을 바치고 추모하는 제사는 명절 때 지내는 차례 외에 기제와 시향으로 나뉜다. 기제(忌祭)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집에서 지낸다. 사대봉사라 하여 부모~고조부모까지 4대만 지낸다.
기제로 받들지 않는 5대조 이상은 음력 10월에 무덤에 제사를 지낸다. 이를 시향이라 하고 요즘이 그 시기이다.
그동안 기제를 모시던 조상이 이제 5대조 이상의 조상이 돼 시향으로 모셔야 한다면 어떤 절차와 제례가 필요할까. 예전에 지체 높은 명문가는 대개 집 안의 사당에 조상들의 신위를 보관해오다 기제 때가 되면 신위를 꺼내와 제사상 위에 올려놓고서 제사를 지냈고, 제사가 끝나면 다시 사당에 안치해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기제에서 시향으로 변경해야 할 조상이 되면 매위(埋位)라 해 사당에 모셨던 신주를 꺼낸 뒤 해당 무덤의 앞쪽에 묻는다. 사당에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면 별도로 한지에 지방을 써 땅속에 묻는다.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망이 높은 분과 배우자는 특별히 불천위라 하여 매위하지 않고 계속 기제를 지내도록 나라에서 허락했다. 불천위 제사는 명문가임을 나타내는 증거 중 하나다.
요즘은 도시화와 핵가족화에 따라 생활환경이 크게 변해 불천위 제사조차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출산율이 떨어지고 조상에 대한 숭배사상이 약화돼 기제에 불참하는 후손들이 많아지는 것은 어느 집안 할 것 없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 런닝 라이프 기사 (0) | 2013.01.10 |
---|---|
[스크랩] [이용대의 등산칼럼ㅣ정체 빚는 지구의 꼭짓점, 에베레스트는 만원이다] (0) | 2012.12.05 |
[스크랩] 시월은 시향을 지내는 계절 (0) | 2012.11.19 |
10의 제곱수 (0) | 2012.09.25 |
강남스타일에 대한 단상 (0) | 201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