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비상 속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어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그제는 울산석유화학공단의 ㈜후성과 SK케미칼 울산공장에서 가스 관련 사고가 났다. 같은 날 중국에서 평택항으로 오던 한중(韓中) 합작 카페리호의 한쪽 엔진이 고장 나 승객들이 불안에 떠는가 하면, 서울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6일 만에 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신호기가 고장 나 전동차가 후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 대 29 대 300의 법칙’으로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1건의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경미한 사고가 29건 일어나고 그보다 먼저 300차례의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고 한다. 사소한 부주의가 반복되면 결국 대재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뼈아프게 경험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달 23일부터 한 달간 도로 항공 철도 등 재난 위험이 있는 시설물 4000여 곳에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는데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잇따르니 국민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이고 철저한 국민 안전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날 발언의 전체 맥락은 강도 높은 ‘안전대책 마련’에 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관료 개혁을 비롯한 국가개조론이 부각되면서 정작 중요한 안전대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국민은 피부로 느낄 수가 없다. 공직사회 개혁과 관(官)피아의 적폐 해소 같은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적폐가 해소되고 국가개조가 될 때까지 안전문제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말 “정작 중요한 것은 안전시스템 정비인데 한국인들은 참사의 원인을 캐려다가 너무 그물을 넓게 던졌다”며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부터 성장정책과 신자유주의까지 문제를 파헤치다 보면 자기비하에 빠져 아무것도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를 고쳐 국가개조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훨씬 간단하고도 당장 실현가능한 안전점검과 안전훈련부터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
너무도 가슴 아픈 국민적 참사에 모두가 책임을 느끼고 자성(自省)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의 책임’은 자칫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1차적 책임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 그리고 운영회사인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있다. 초동구조와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해양경찰대와 ‘해양수산부 마피아’ 등 공조직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하게 문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 전체가 이들 세월호 참사에 책임 있는 당사자들과 다를 바 없다며 자학(自虐)에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2011년 부산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설봉호의 경우 밤 12시를 넘겨 원인 모를 화재가 났지만 승무원 26명의 신속한 대응과 해경의 출동에 승객 104명이 전원 무사히 대피했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의인(義人)과 의사자(義死者)가 적지 않았다. 이번 일로 마치 대한민국이 태어나선 안 될 나라였던 것처럼 총체적 자기비하에 빠질 필요가 없는 이유다.
벌써 일본의 극우세력과 일부 주간지는 ‘한국은 삼류국가’ ‘한국은 아직 개도국’이라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며 한국 깎아내리기와 비아냥거리기의 재료로 이용하고 있다. 2011년 3월 사망자 1만5885명, 실종자 2623명, 부상자 6148명을 낸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 당시 도쿄전력과 정부의 무능, 갈팡질팡하는 행태는 세월호 참사 때보다 더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삼류국가라고 비하하거나 사회적 국가적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나라가 전부 틀려먹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자학과 자기부정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공직사회 개혁이나 의식혁명, 국가개조도 바람직하지만 우선은 이번 사고의 핵심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은 이번 주말을 반납하고라도 대충, 건성으로 해치웠던 재난 위험 시설물 4000여 곳의 안전점검을 다시 한번 내집을 챙기듯이 꼼꼼히 해주기 바란다. 15일 민방위훈련 때는 전 국민이 실제 재난·사고에 맞닥뜨린 것처럼 훈련할 수 있도록 정부는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 의식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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