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천성단
-광화문
-남산 안중근상
이어서 올 해도 첫 행사로
자기집에서 걸어서 광화문 옆 사직단에 모이는 행사를 가졌다.
각 지역별로 천신께 고하는 사직단이 있다
서울에는 광화문 서쪽에 사직단이 얐다
평상시 개방을 안하지만
특별한날 해설사와 동반 입장 할수 있다.
모처럼 애국가 4절까지 부르고 덕담을 나누었다.
국태민안을 잠시 생각해 본다....
모든 동기생들의 안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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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社稷壇)은 조선 시대, 국가에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를 정하면서 좌묘우사(左廟右社)에 따라 경복궁 동쪽엔 종묘를, 서쪽엔 사직단을 배치하였다.
사직단은 두 겹의 담장 안에 둘러싸여 있으며, 담장의 사방에는 홍살문을 세웠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단(社壇)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직단(稷壇)은 서쪽에 배치했으며, 단의 형태는 '하늘을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 의해 네모난 방형(方形)으로 만들었다. 단의 둘레에는 3층의 돌계단을 사방으로 둘렀으며, 단 위에는 각 방위에 따라 황색, 청색, 백색, 적색, 흑색 등 다섯 가지 빛깔의 흙을 덮었다.
처음 조성 시 단 주변에 동ㆍ서ㆍ북쪽 산기슭을 따라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신실(神室)을 두었는데, 임진왜란 때 신실 등은 모두 소실되었다. 선조 말년에서야 수복되고 역대에 걸쳐 수리가 계속되었다. 신문(神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 있다.
일제(日帝)가 조선의 사직을 끊기 위해 사직단의 격을 낮추어 공원으로 삼으면서 크게 훼손되었고, 도시 계획 등을 거치면서 면적이 축소되었다. 이후 1980년대 말에 사직단 정비 사업이 추진되어 단과 그 주변이 일부 복원되었다.
문화재 보호시설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직접 출입이나 왕래는 할 수 없고 대신 사직단 홍살문이나 돌담 너머를 통해서 제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문 옆 출입구
어로와 판위
석주-기를 쐰다
오방색 흙을 채우고 황토로 덮었다.
왼쪽이 사단 오른쪽이 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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