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3월에 구역 성경전서가 출판되면서 공인번역위원회는 개역위원회(The Board of Revisers)로 발전적 해체를 했다. 1912년 1월에는 개역위원회에 대영성서공회가 정한 ‘성경 번역, 개역, 편집에 관한 지침과 규정’을 담은 소책자가 전달되었다(Rules for the guidance of translators, revisers, & editors, working in connection with the bfbs). 그 결과 1921년 가을에 개역 본문의 성과를 측정해 보기 위해 창세기를 개역본문으로 출판하여 각계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그 결과 게일이 주도한 개역 본문은 대영성서공회의 규칙서는 따르기보다는 게일의 번역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일의 번역원칙은 요컨대, “문자적인 직역보다는 자유스러운 의역(free, rather than literal)"을 주장하는 것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게일의 원칙을 따르는 창세기 개역을 ”단축된 풀이역(abbreviated paraphrases)"이라고 규정했다. 게일이 주도하는 구약개역은 “매우 중요한 단어와 개념들”을 자주 생략했기 때문에 이점을 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 구약의 말씀과 현실, 한국성서학연구소, 1996, 36쪽 이하 참조). 1921년부터 개역위원회는 신약개역소위원회와 구약개역소위원회(이하 구개위)로 나뉘어 작업을 하게 된다. 구약개역 작업은 대영성서공회 규칙서에 따라 방향재조정 되었고, 게일은 자신의 번역원칙이 받아들여 지지 않았기 때문에 1922년 개역위원을 사임했다. 게일은 그가 주도적으로 작업한 구약개역 원고를 1924년 3월 상임성서실행위원회 앞으로 제출했다(게일은 자신의 번역원칙을 굽히지 않고, 1925년 기독교창문사를 통해 자신과 이원모의 이름으로 신역 신구약전서를 출판했다). 1922년 9월 민휴는 방향 재조정된 구개위의 사정을 영국 성서공회 본부 킬구어(R. Kilgour) 총무에게 보고하고, 한국의 구개위가 요구하는 옥스퍼드 히브리어 사전과 긴스버그(Christian D. Ginsburg)가 대영성서공회를 위해 편집한 히브리어 구약 원전 성경을 3권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Christian D. Ginsburg, The Old Testament, diligently revised according to the Massorah and the early editions, with the various readings from manuscripts and the ancient versions, 1908, 1926). 그해 11월에 그에 대한 답신에서 킬구어는 구개위가 대영성서공회 규칙서를 따르게 된 것을 기뻐한다는 뜻을 전하고, 요청한 옥스퍼드 히브리어 사전과 긴스버그가 편집한 대판 히브리어 성경과 3권의 소판 히브리어 성경을 보내니 구개위에 전달해 달라고 편지했다. 이렇게 해서 구개위는 적어도 이때부터 긴스버그 편 히브리어 성경을 대본으로 하여 가능한 한 원전에 충실한 직역원칙으로 개역작업을 해 나갔다(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 상게서, 40쪽 이하; 동일 필자, “한국어 성경 번역의 역사”, 기독교사상, 1993.2, 30쪽 참조). 상임성서실행위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구약 히브리어에 능한 적임자를 찾아 구약개역의 책임을 맡기려고 했다. 여기서 피터스가 적임자로 선택되어 1926년 1월부터 구개위에 참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피터스는 동년 2월 1일 대영성서공회 규칙서를 수령하였고, 3월 26일에는 구개위의 “평생위원(permanent member)"으로 위촉되었다. 이 때 민휴는 피터스에 관해 킬구어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히브리어 학자로서 그는 한국에서 그 어느 사람보다 훨씬 앞서 있으며 그의 한국어 지식도 매우 탁월합니다.”(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 상게서, 43쪽). 1926년에 구약개역 평생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이 계기가 되어, 피터스 부부는 1927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피터스는 오전과 오후에 번역 일을 하며 원전(the original text)을 앞에 놓고 세심하게 대조하여 개역을 하고 있다고 선교부에 보고했다. 1930년까지 레이놀즈, 베어드, 그리고 피터스 세 사람이 중심이 되고 이원모가 조수가 되어 구약개역 작업이 계속 이루어졌다. 피터스의 아내 에바 휠드가 1932년 7월에 타계했다. 피터스는 1933년 11월부터 1934년 8월까지 미국에 가 있었다. 피터스가 미국에 있는 동안 그가 속해 있던 미북장로회선교부는 재정난을 이유로 피터스를 한국에 재 파송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당시 63세의 피터스를 결국 다시 한국에 파송한 것은 그가 한국에서 구약개역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휴는 이러한 사정을 파악하고 런던에 있는 본부에 미리 알렸다: “구약개역을 위한 핵심 인물로 우리가 피터스를 얻지 못한다면, 개역작업이 곧 끝날 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 상게서, 47쪽). 첫째, 둘째 아내와 사별한 후 1934년 피터스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앤 쿠퍼(Anne Cooper)와 결혼하고 그 해 가을에 같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35년 새해부터 레이놀즈와 피터스가 다시 구약개역에 함께 박차를 가했다. 동년 3월에는 이원모(李源謨)가 개역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해 여름 내내 레이놀즈, 피터스, 이원모 세 사람은 지리산에 있던 레이놀즈의 별장에 모여 남아있는 구약개역에 전력을 다 했다. 이러한 강행군의 결과로 피터스에 의하면 1936년 3월에 드디어 구약개역작업이 일단 끝이 났다. 1936년 12월에 이 구약 개역 전서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1936년 판 개역 구약전서는 피터스가 본격적으로 개역작업에 관여하기 전에 개역되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예컨대, 문체의 통일성과 번역의 정확도 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특히 오경, 수, 삿, 룻, 삼상, 잠, 사, 렘, 합과 단 등이 지적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 1936년 판 개역 구약본문을 피터스와 이원모가 맡아서 다시 작업(수정과 필요한 경우 재번역)을 하였으며, 레이놀즈의 승인을 받아 1937년 8월까지 재개정을 마쳤다. 1937년 9월22일 상임성서실행위원회에서는 마침내 신구약 개역위원회의 개역완료 보고가 있었다. 이렇게 하여 최종 확정된 개역 구약본문이 개역 신약본문과 함께 1938년 9월3일에 개역 성경전서로 출간되었다. 그 동안 구약개역은 1912년에 시작되었지만, 1922년에 방향재조정을 거쳐 새로운 출발을 했으며, 1926년부터 피터스가 “평생위원”자격으로 구개위에 본격적으로 참여함으로써 1937년에 그 완결을 보았고, 1938년에 드디어 한국교회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피터스는 그가 1941년 그의 나이 70세에 한국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알렉산더 피터스는 우리나라 구약 국역사에서 선구자이며 또한 구약 구역에 참여한 일과 함께 특히 개역시대 구약 개역의 주역으로서(1926-1938년에 집중적으로 공헌함) 오늘까지 한국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성경”으로서 강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1938년 판 개역성경의 구약본문을 완결한 장본인이다. 무엇보다 피터스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구약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다. 피터스는 1901년 미국 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제출한 선교사 지원서 5번 항목에서 “영어 외에 어떤 언어들들 공부했는가?”라는 물음에 자필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었다: “라틴어, 희랍어, 고대 슬라브어, 히브리어, 불어를 공부했으며, 영어, 러시아어, 이디쉬어(yiddish), 독일어, 한국어로 회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어서 “언어들을 습득하는데 나에게는 어려움이 없다(languages are not difficult for me to acquire.)”고 했다(피터스의 1901년 선교사 지원서:reproduction from original in the collections of the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425 lombard st., phila., pa.). 성경번역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 영적인 것이며,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 원어 지식 및 그와 관련된 어학 능력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약 국역사에서 피터스는 어느 선교지 성경번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약번역자로서는 독특하고도 탁월한 자질을 구비하였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은 특히 구약의 경우 처음부터 히브리어 원전 성경에서 번역하지 않고, 한문성경이나 영어성경에서 번역한 ‘선교사 역’으로서 오류가 많다는 설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구약 국역사에서 피터스의 역사적인 위치와 그의 국역 활동의 의의를 조명해 볼 때, 그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낭설일 뿐 아니라 무책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