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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이야기

채희성 2013. 10. 4. 16:43

이신우/논설위원

구약성경에서 ‘천지창조’ 이야기의 모태 역할을 했던 수메르 신화에 인간 창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이 꽤나 익살스럽다.

황금 시대에 이 세상에는 신들만이 존재했다. 그 신들은 자기네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노동을 해야 했다. 신들이라고 노동이 즐거울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신들은 꾀를 냈다. 자기들 대신 노동을 시키기 위해 작은 신들을 창조해낸 것이다.

작은 신들이 노동을 대신하자 큰 신들은 이제 팔짱을 끼고 지시하는 역할만 했다. 작은 신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운하 건설을 위해 40일간 끔찍한 노역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작은 신들이 마침내 흙 운반용 삼태기를 내던지고 연장을 부수면서 꼭두새벽부터 신들의 통치자인 엔릴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작은 신들의 노동파업에 당황한 큰 신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작은 신들을 대신해서 노동을 감당할 원시 노동자로 인간을 창조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큰 신들이 작은 신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큰 신들은 폭동 주모자 한 명만을 골라 사형을 시켰고 그 죽은 신의 피와 살을 찰흙과 섞어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인간들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노동의 임무를 다해야 했다.

인간 역시 그들에게 피와 살을 전해준 신들만큼이나 영악했다. 노동의 고통에 지친 인간들은 이제 자기네를 대신해 노동을 맡아줄 ‘로봇’을 만들어 냈다. 기계인간을 의미하는 로봇은 1921년 초연된 체코의 카렐 차펙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이 로봇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체코 말로 ‘노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 혁명’이 중국에서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는 보도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와 달리 힘든 노동을 기피하는 바람공장들이 어쩔 수 없이 로봇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노동 비용이 자본 비용을 능가하는 시점에 공장에서의 로봇 도입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런 경제법칙이 거꾸로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이쯤되면 문명이 발전한 덕분에 인간에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과학 문명을 발전시킨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