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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복지

채희성 2013. 10. 4. 16:37

아침저녁 가을바람이 선선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은 한여름처럼 뜨겁기만 하다. 특히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매달 20만원씩 받게 하겠다는 선거 공약과 달리 소득 하위 70%에게만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지급하겠다는 정부 방침 발표가 복지 논쟁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철혈재상'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1880년대 세계 최초로 '노인'의 나이를 규정하고 복지정책을 수립하던 시절에도 의회와 대화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오늘날처럼 각계의 목소리가 분출되는 사회에서 복지 논쟁을 단기간에 결론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산업화에는 성공했으나 복지정책에서 후발국을 면치 못한 우리로선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엊그제 설문 조사에서도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가 각각 4대1의 비율로 나왔다.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정책 수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며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비생산적 복지 논쟁을 종결하고 좀 더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복지정책으로 시각을 넓혀야 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복지 수요가 빠르게 증대되는 상황에서 국가재정으로 감당할 길이 막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하므로 좀 더 효과적인 복지정책이 나와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초고속으로 고령화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는 613만명으로 12%를 넘었다. 보험회사는 이미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맞춰 영업 전략을 짜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취업 기간이 가장 짧다. 기대수명 여든 살과 건강수명 일흔 살 사이의 차이는 OECD 국가 평균치 6년에 비해 훨씬 크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고령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국가적·사회적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질병에 시달리는 고령 인구의 증가세를 늦추는 '예방적 복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102개 주요 질환 가운데 80% 이상이 환경 위험 인자 노출과 관련되며, 위생 시설 개선과 중금속 중독 예방 대책이 각각 최대 34배와 221배의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만성질환 예방(6배)이나 면역 예방(27배)보다 훨씬 효과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세계적으로 삶의 질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저런 지수 개발 모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들 지표에는 국내총생산(GDP) 등 객관적 요소와 함께 삶의 질과 만족도 등 주관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 특히 '생태계 건전성' 등 자연환경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OECD는 행복지수 산정에서 GDP 이외의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2012년 BLI (Better Life Initiative) 출범에 따라 건강과 환경 등 11개 지표를 선정했다.

네덜란드에서 실험했더니 녹색 자연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3배 이상 건강하고, 비만 위험이 40% 줄고, 콜레스테롤 수준이 내려간다는 결과를 얻었다. 우리도 북한산국립공원 둘레길을 한 주에 2~3회, 12㎞를 산책한 결과 체중과 혈당이 감소하고 혈관 질환도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에 인구밀도가 높아 생태계 용량이 취약하다. 기후변화에서 평균 기온 상승도 지구 평균치의 두 배가 넘는다. 그에 따르는 충격도 그만큼 크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환경 취약 계층과 취약 지역이다. 환경적 스트레스에 의한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가 벌어짐으로써 복지정책의 수요와 부담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국민의 보편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제·사회·환경 정책의 세 기둥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지속 가능 발전 정책이 국정 기조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적 문제가 다 얽히고설킨 오늘날의 상황에서 복지정책도 사후 처리 방식 위주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전 예방적인 복지정책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선진형 복지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다.